[주말의 책] 황승택 에세이 , 임현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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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의 책] 황승택 에세이 <다시 말해 줄래요?>, 임현 소설집 <그들의 이해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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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좋고, 엔데믹은 저무는 추세다. 자연이나 핫플레이스마다 인파가 북적이지만, 모든 사람이 꼭 그런 방식의 휴식을 즐기는 건 아니다. 쉬는 날이면 밖으로 나가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집에 있어야 내면의 에너지를 회복하는 사람도 있다. ‘집콕’과 혼자만의 시간이 소중한 당신이라면 지금부터 소개할 책 2권에 주목하자. 당신의 주말을 더없이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다. 

황승택 에세이 『다시 말해 줄래요?』

황승택 에세이 &lt;다시 말해 줄래요?&gt;황승택 에세이 <다시 말해 줄래요?>

민음사에서 출간된 황승택 에세이 『다시 말해 줄래요?』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급성중이염으로 인한 청각 상실 경험과 그런 경험을 통해 알게 된 비장애인 중심 사회의 면면을 생생하게 기록한 체험기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는 소리를 잃은 이후, 청력 회복을 위해 수술을 받기까지 200일 동안 경험한 소리 없는 세상이다. 이때 본 세상은 완전히 다른 얼굴의 세상이다. 후반부는 인공와우수술 이후 외부 장치의 도움을 받아 청력을 회복해 가는 과정을 다뤘다. 

비장애인 중심 사회의 민낯

몸의 모든 기능 중 청각 하나를 잃었을 뿐인데 저자는 한국 사회가 자신의 몸에 ‘부적격자’라는 낙인을 찍은 것처럼 느낀다. 청력을 기본값으로 세팅한 한국 사회는 청력에 문제가 없는 사람에게는 편리한 나라지만 청각 장애인에게는 어떤 위험이 도사릴지 모르는 아마존의 정글이다. 이 정글은 시각, 청각, 정신 등 각종 장애가 생겨야 비로소 정체를 드러낸다. 전시회장을 방문했을 때, 클럽하우스 신드룸 속에서, 안마 의자를 렌털하려다, 저자는 일상의 곳곳에서 청인 중심 사회, 건강 중심 사회, 비장애인 중심 사회가 세워 놓은 높은 벽에 가로막힌다.


장애로 얻은 새로운 소속감


외부 수음기를 착용하면서 점차 과거 생활로 복귀하고 있음에도 저자의 신체는 법적으로 과거와 다른 상태가 되었다. 인공 와우를 착용하지 않으면 소리를 들을 수 없으므로 현행법상 청각 장애인 자격이 생긴 것이다. 청각 장애인 자격을 얻기 위해 동사무소에 관련 서류를 제출하러 간 날, 저자는 자신의 일을 처리해 주던 담당 공무원의 불편한 오른쪽 손을 보고 그를 향한 내적 친밀감을 느낀다.

청력 수술 이후 장애는 어디서든 배제를 경험하게 만드는 조건이자 상실감을 만드는 요소라고 생각했지만 서류를 접수하면서 장애가 연대의 조건이자 새로운 범주의 집단과 공감을 형성하는 기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비록 그 그룹이 현실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있더라도 서로의 상처를 응원하고 도와줄 새로운 범주의 사람들이 있다는 자각의 순간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배려를 우선하는 문화를 위해

누구나 이동에 어려움을 겪는 불편한 몸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준비해야 할 미래의 사회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삶의 조건에 차이가 생기지 않는 사회가 아닐까. 그런 사회의 미덕은 ‘효율’이 아니라 ‘함께’일 것이다. 세상에는 합리적으로 보이는 구성원 전체의 편익 대신 배려가 우선시되는 문화도 있다. 미국에서는 스쿨버스가 정차하면 한 시간에 차 세 대가 지나갈 것 같은 한적한 도로에서도 양방향 차선의 모든 차량이 군말 없이 스쿨버스가 다시 출발할 때까지 기다린다. 바쁘다고 스쿨버스를 앞지르는 행위는 용납되지 않는다. 저자는 편익 대신 배려가, 속도 대신 모두의 안전이 중심에 선 사회를 적극적으로 상상한다.

친절하지 않아도 다정할 수 있다

배려란 뭘까.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배려 있는 행동이고 사려깊은 생각일까. 평소 다감한 성격은 아니지만 환자를 배려하는 말과 행동으로 저자에게 소소한 감동을 주었던 주치의와의 에피소드, 청각 상실 이후 필독서처럼 즐겨 봤던 웹툰 『나는 귀머거리입니다』 속 장면들, 장애가 있는 몸에 대한 편견을 불식시켜 준 긴즈버그 대법관이나 장영희 교수의 삶 등을 통해 저자는 장애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 나아가 나와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며 갖추어야 할 태도를 고민한다. 고민이 지속될수록 아픈 몸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집중되어 있던 마음은 아픈 몸으로 살아가는 것이 덜 힘든 세상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넓어진다.

■ 본문 중에서①

현대 의학은 장애와 질병의 치료 과정에서 신체 기능과 내외부의 상처를 봉합하는 것에 치중하면서 당사자가 정신적으로 고립되지 않도록 하는 정서적 배려에는 무심하다. 우리나라 유수의 대학병원에서 항암 치료로 3년 9개월, 청각 수술과 재활로 1년 가까이 치료를 받으면서 정서적인 부분을 케어받은 적이 없다. 정 힘들면 정신안정제를 처방해 줄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아본 적이 딱 한 번 있을 뿐이다. (32쪽)

■ 본문 중에서②

동료의 말을 듣는 것에 집중하는 것보다 나를 더 힘들게 한 건 했던 말을 다시 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복직을 하면서 이 말을 하는 걸 절대 부끄러워하거나 피하지 말자고 다짐했음에도 “다시 말해 주겠어?”라는 말은 입안에서만 맴돌 뿐 입 밖으로 발설되지 못했다. (중략) 나는 청력 재활에 집중하는 동시에 과거의 사고방식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내 자아는 청력 회복 수술 전 그대로일지 몰라도 내 신체는 과거와 같지 않은 게 인정하지 싫지만 마주해야 하는 냉정한 현실이다. 약해 보이는 게 싫어서 잘 듣는 척하다가 중요한 정보를 빠뜨리거나 오해를 살 수도 있다. 나에게 주문을 건다. “다시 말해 줄래요?” 이 말은 내가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다. ‘당신의 의사를 더 정확히 알고 싶다’는 뜻의 정중하고 격식 있는 요청이다. (118~119쪽)

임현 소설집 『그들의 이해관계』

임현 소설집 &lt;그들의 이해관계&gt;임현 소설집 <그들의 이해관계>

“임현의 성공적인 소설들은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 말고 ‘끝까지 답할 수 없는’ 질문 말이다.” _신형철(문학평론가)

『그들의 이해관계』는 2017년 제8회 젊은작가상 대상과 2018년 제9회 젊은작가상을 연이어 수상하며 한국문학의 주목받는 젊은 작가로 떠오른 임현의 두번째 소설집이다. “공감과 위로와 정당한 메시지의 가치를 폄하하지 않으면서도, 쉽게 던지기 어려운 질문”을 펼쳐 보여 “신뢰”(이장욱 소설가, 시인)가 간다는 평을 받으며 제9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그들의 이해관계」, “윤리와 논리를 둘러싼 딜레마를 다루”며 문학과지성사의 ‘이 계절의 소설’(2020년 겨울)에 선정된 「거의 하나였던 두 세계」를 포함해 총 아홉 편이 수록되었다.

불행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내려놓으면서 위로받는 역설

임현의 소설은 대체로 예기치 않은 사건 사고로 가까운 누군가를 여의거나 곤경에 빠진 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표제작 「그들의 이해관계」는 버스 사고로 배우자 ‘해주’를 잃은 ‘나’가 우연히 그 사고를 피한 대신 경로를 이탈했다는 이유로 부당 해고를 당한 버스 기사를 만나게 되는 이야기다.

삶이란 “자꾸 나쁘게만 흘러가”(31쪽)고, 누군가 얻는 것이 있다면 누군가는 반드시 잃는 것이 있다는 무정한 세상사 이해(利害)의 법칙. 이 구조에서 ‘나’는 누구도 선인도 악인도 아니라는 걸 깨닫고 죽음을 피한 그 버스 기사를 탓하려던 마음을 내려놓는다. 자신처럼 어려운 국면을 지나고 있는 버스 기사가 던지는 “어느 한쪽이 자꾸 좋아진다는 것은 누군가 나쁜 쪽을 떠안게 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27쪽)라는 고통어린 질문에 다만 귀기울일 뿐이다.

「그들의 이해관계」와 연결된 작품인 「나쁜 사마리안」은 상실의 상처를 지닌 두 인물이 얻는 위로의 순간을 좀더 선명하게 보여준다. ‘나’는 댐을 세우느라 물속에 잠긴 “수몰지구”(44쪽)처럼 여전히 가슴 한편에 남은 죽은 해주에 대한 미련 때문에 함께 살고 있는 ‘도경’에게 미안함과 죄의식을 느낀다. 어느 날 ‘나’는 같은 대학 출신이면서 무명배우로 일하는 ‘오종구’가 밤의 번화가에서 혼자 울고 있는 모습을 목격한다. 시간이 지난 후 우연히 만난 오종구와 대화를 나누게 되면서, ‘나’는 어디서도 받지 못했던 종류의 위로를 받는다. 실은 오종구 또한 그날 ‘나’를 보고 있었는데 ‘나’ 역시 울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봐주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이토록 많은 사람 중에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너무 외로워졌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누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게 느껴졌습니다.”(67쪽)

임현은 「나쁜 사마리안」을 통해 타인에게서 받는 위로란 어떠한 목적이나 의도 없이 다만 뜻밖의 상황에서 스치듯 전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시선은 「해원」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배우자 ‘윤재’를 여의고 홀로 ‘노아’를 키우는 ‘해원’은 죽은 윤재가 했던 것처럼 노아와 공놀이를 하려다 그만 공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배우자 없이 온 힘을 다해 보살피던 노아가 교통사고로 사경을 헤매는 지금, 아이의 수술이 잘 끝나기를 바라는 일 말고는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걸 깨달은 해원은 공원에서 잃어버린 공이라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곳을 지나던 공원 관리인이 발길을 멈추고 그런 해원을 보게 되는데, 그 시선은 마치 소설 바깥의 작가의 시선과 닮아 있다. 

“관리인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돕는 것도 아니었다. 해원이 지금 무엇을 찾고 있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녀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손전등 빛을 따라 옮겨줄 뿐이었다.”(92쪽)

애써 상대를 이해하려 들거나 섣불리 이유를 묻지 않고 한 발짝 거리를 둔 채 조심스럽게 지켜봐주는 이러한 태도를 임현은 주목한다. 「이해 없이 당분간」에서 이별을 치른 ‘나’가 한때 애인과 함께 자주 시간을 보냈던 시내버스에 올라탔다가, 문득 버스 기사가 이유를 알 수 없이 울음을 터뜨리며 “아무도 가보지 못한 노선으로”(138쪽) 달리는 것을 말리지 못하고 그저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슬프게 만드는가. (…) 우리는 각자의 이유로 따로 또 함께 울”(같은 쪽)고 말았다고 말하는 아름답고 환상적인 장면처럼, 이러한 태도는 그 자체로 묘한 울림을 준다.

“나를 설명하기 위해 나는 자주 다른 사람을 내세우곤 했다. 그럴수록 어쩐지 더 많은 나를 말할 수 있었는데 소설을 쓰는 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늘 나 하나만으로는 부족해서 누군가를 통해 이야기될 수밖에 없는 동시에, 나 역시 다른 누군가를 위한 이야기가 되어주어야만 했으니까. 무엇보다 최초로 말을 시작하는 사람은 아닐지라도, 최초로 듣는 사람은 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_‘작가의 말’에서

임현 소설은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거나 쉽게 답할 수 없는 윤리적 난제의 어려움을 항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일에 대한 입장과 관점, 그 일의 의미를 좌우하는 것은 각자가 놓인 ‘상황’일 수밖에 없다”(해설, 245쪽)는 것, 따라서 “자신도 모르게 이해를 좇고 마는 것, 언행불일치와 자기모순, 저 좋을 대로 기억을 편집하고, 남의 말을 곡해하며, 단것은 삼키고 쓴 것은 뱉으며, 자신만이 옳다고 강변하는 것”이 “모두 눈앞의 상황을 견디는 ‘상황주의자’의 방어기제에 다름 아니”(해설, 249쪽)며, 그것이 바로 인간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어두운 진실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 진실을 직시하는 눈을 가질 때만이 우리 사회 곳곳에 붙은 “윤리 강령”(117쪽)처럼 현실에서 실체적인 의미로 기능하지 못할 뿐 아니라 되레 악덕을 포장하는 구실이 되는 ‘윤리’라는 말의 허상을 깨우치게 되는 건 아닐까? 

■ 본문 중에서①

나는 이따금씩 내가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모르는 사람처럼 멀어 보일 때가 있는데 적어도 그때만큼은 그들도 그렇게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_「나쁜 사마리안」, 51쪽

■ 본문 중에서②

관점에 따라 같은 것도 다르게 볼 수 있다는 말에는 만약 아무런 태도나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면 무엇도 볼 수 없다는 점이 전제되어 있다. 요컨대 우리는 의미 있는 무언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는 무언가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셈이다. _「거의 하나였던 두 세계」, 110쪽

■ 본문 중에서③

나는 진실의 반대말이 주로 거짓이나 가짜라고 배워왔는데, 살면서 오히려 무지에 더 가까운 개념이 아닌가, 생각할 때가 많았다. 무엇보다 나는 종종 진실을 알고 있다고 오해할 때가 많았고, 그것이 잘못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은 대체로 무언가를 더 알게 되었을 때였으니까. _「거의 하나였던 두 세계」, 1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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